


“ …그, 제게 받으실 것이 있으신지… ….”
외관
반짝이는 철제 투구는 얼굴의 판을 들어올리지 않는 한 안쪽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가까이에 섰을 때에나 안쪽의 녹색 눈동자가 보이지만, 그도 쉬이 보이지는 않는다. 간단한 튜닉과 바지를 안쪽에 입은 후 흰 겉의를 두른 몸은 언뜻 보기만 해도 단단하다. 허리와 배를 넓게 덮는 허리 방어구와 허리띠는 가죽으로, 장비하고 있는 라메르크 신성 사제의 갑주와 적당히 맞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복 위에 장비를 전부 착용한 것 위에는 토벌대의 녹색 망토를 후드까지 덮어쓰고 완갑을 그 위에 맞추어 올렸다. 굽 있는 다리 갑주는 걸을 때마다 철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허리띠에 고정해 맨 가방과 성서는 서로 부딪히며 투박한 소리를 냈다.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각이 잡힌 몸과 자세인데, 어쩐지 순례자와 흡사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투구로 얼굴을 감추려 하는 건 아니라서, 이따금 투구를 벗고 후드를 아래로 내리면 약간의 회색과 붉은색이 섞인 듯한 갈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앞머리를 내고, 투블럭으로 다듬은 머리카락 아래의 흰 얼굴은 갸름한 편에 속했고, 이목구비는 비교적 뚜렷하다. 심기일전이라는 마음으로 푸른색과 녹색 염료를 섞어 바른 얇은 입술에 작은 입. 녹색의 눈동자를 감싼 눈매가 둥글고, 그 가장자리에 금빛 염료를 바른 것도 그렇거니와 얇고 긴 눈썹은 순하고 고요해 보이는 인상에 일조한다. 오른편 뺨에서 코를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있지만 사납다기보다는 어쩐지 아련한 인상에 한몫을 거들었다.
성격
" 안 할 수는 없을까요… 일할 일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치만 이미 텄죠… 환장하겠어 증말… "
복잡한 일도, 뭔가 큰 일도, 깊은 일도, 하나같이 달갑지 않다. 크레아께서 흐르게 하겠다 결정하신 선로이니 걸어 마땅할지언정 대의가 얽히고, 깊은 의미가 담기고, 번거롭고, 무서울 것이 뻔한 일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일들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다. 감정이 솔직히 드러났으며 다가오는 일에 대한 감상도 강하게 짓쳐들어와 우는 날도 있었고, 화를 삭히는 날도 있었지만 이따금은 뻔뻔하게 굴기도 했다. 무던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오로지 일만 읊고 스치는 것이 편하다. 요컨대 소시민이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아우 예, 그래도 해야죠… 예에엑… "
그래서 그런 것일까? 시키는 일만큼은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비뚜름한 반응이 투덜투덜 나오기는 해도 오래가지는 않았고, 그것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늘 이해했다. 이따금은 필요하지 않으면 또 어쩔건가, 싶어 체념과도 비슷한 것으로 따라가기도 했고 말이다. 그는 무언가를 지시하고 이끌기보다 따라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상 한 발짝 뒤에 서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내를 다했기 때문에 싫다, 옳지 않다, 라고 하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가 그런 말을 할 사람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 번 하기로 했다면 끝까지 뛰어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 저는 큰 뜻은 무서워서 모릅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 찔려가지고 나올 뿐인데요… 이걸 울며 겨자먹기라고 하죠… "
그러나 머리보다 가슴을 따르는 사람이다. 문제는 원체 대담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지만… 그의 가슴이 뛸 때는 열렬히 뛰기보단 쿵, 내려앉듯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 탓일까? 그는 자신을 위해 돈이든, 마음이든, 그 무엇이든 쓴 사람에게는 그만큼에 달하는 답례를 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자신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게 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아주 사소한 일들, 타인으로 비롯된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에 늘 울 것 같은 얼굴로도 일어나 가장 앞으로 뛰어갔다. 싫고, 무섭다. 하지만 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들에 있어 그는 놀라울 정도로 타협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 드는 일들에 있어서는 기존의 생각을 빠르게 고치고는 했다. 사람을 믿었으며 속더라도 울거나, 허허롭게 웃고 나면 또 그만이다. 행동해야 하는 일들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그의 정의고, 신념이었다. 비록 그는 이런 단어를 스스로에게 붙이는 일이 없고, 자신의 행동을 기만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지만. 행동하게 만드는 두려움은 한편으론 신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기타사항
빈민가 출신. 이런저런 잡일이나 소매치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루는 소매치기가 걸리는 바람에 지갑 주인에게 매를 맞고 있었으나 운 좋게도 근처를 지나던 라메르크교 사제의 덕으로 빠져나온다. 그저 매 맞는 소매치기를 구해주고 훈계했으면 되었지, 왜 자신에게 손까지 내밀어주었는지는 여전히 몰랐지만 ... 내밀어진 손을 본 이발라스는 크레아에게 몸을 바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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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에서 더 이상 지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해치거나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삶보다는 좀 더, 평화로운 순리에 따르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을 빛으로 보고 달려나가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구제하는 삶, 그리고 그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삶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후에는 절박할만치 교리를 쫓고, 행동하려는 자세에 상당량의 신성력을 내보인 것이 더해져 라메르크 교단의 신성 사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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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것은 방패와 방패뿐이지만 두려워도 버티고 서는 성정이라거나 뛰어들어야 하면 행동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는 것, 지구력과 순발력 덕에 제 몫을 찾은 셈이다. 사각방패를 고정하는 왼팔은 방어에 주력하고, 오른손에 쥐는 버클러는 공격의 봉쇄나 방어의 보조를 거든다던가. 그래도 하는 행동을 보자면 신성사제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비교하려니 영 어리버리하긴 하지만 ...
말이 느린 편. 머릿속에서 한 번 생각하는 것에도 신성 사제로서의 언사를ㅡ이미지를ㅡ 지켜야 한다던가, 오만가지 걱정이며 생각이 다 스쳐지나가는 탓에 '예, 아니오'의 대답은 반 박자, 그 외의 말은 꼭 한 박자 느리다. 종종 생각이 지나쳐 본인 딴에는 가득한 걱정과 염려, 기타등등을 담은 채 한 말이 지옥같은 오해를 빚는 방향으로 나오기도 하는 듯 싶다. 너무 긴장하면 그런다고.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서야, 뭐든 시키면 일단 하고 본다. 거절을 모른다기보다는 대개 거절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 잡일 하나는 기막히게 잘 한다. 요리, 짐꾼, 필사 대리, 무구 닦기, 옷 꿰메기 말만 하세요! 일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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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기 주장을 잘 못하니 거절을 하지 못하고 쉬이 휘말리는 것이 사실이라 ... 종종 사기를 당할 때도 있었다는 듯하다. 그래도 누군가 큰 화를 입지 않았으면 다행 아닌가 ... 싶어 지금껏 무던히 넘겨버린 편.
소지품은 몸의 반 이상이 되는 큰 방패와 작은 버클러 하나, 은색 종과 짙푸른 가죽 표지에 누런 내지의 성서, (각각 재와 돈 몇 푼이 든 주머니와 약초즙이 담긴 작은 병 여럿, 푸른색과 노란색, 초록색 염료가 담긴 작은 통, 돌돌 싸맨 기름 먹인 헝겊이나 자잘한 것들이 든 ) 가죽 가방. 은색 종은 그가 앞에 나설 때면 늘 울리곤 했다. 보호하거나 치료하려는 사람에게 먼저 알려라도 주려는 듯이.
지원동기
그, 그게요 ... 용병들 소문 듣고 ... 제게 혹시나, 하고 물어보시는 마을 분들의 부탁을 듣고 제가 잘... 생각을 해 봤거든요? 모든 일에는 신께서 정하신 끝이 있고, 그 끝이 나가오기 전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고로 그 끝을 저희가 정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끝처럼 생각이 들어도, 저희가 정하면 그건 사람이 정한 끝이잖아요...? 그렇다면 그게 언제건 간에, 최선을 다해 바르고, 선하게 산다는 건 ... 지금같은 때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과, 끝을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더 차이가 큰 일이에요. 그러니까 ... 보호하고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는 것. 더 나아가, 작금을 바르게 마주하며 재앙 앞에 선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어떤 방면으로는 신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닐까 ... 그 그런 ... 그렇다구요 ... 으아아아 이상하면 찬송으로 반박하세요 저 말고 크레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