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자, 세상을 구한 값으로는 얼마를 쳐 주려나?”
외관
상인의 필수 덕목을 꼽으라면 그 중 첫 번째는 역시 신뢰 가는 인상이겠죠. 남부 해안의 섬과 중부 평야의 수많은 나라들, 북부의 험준한 산길 너머 마을까지 물자와 식량과 문화와 사람을 실어다 나르던 상인은 갈고 닦은 호감형으로 무리 없이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짙고 검으며 결이 굵은 머리카락, 뚜렷한 눈썹과 콧잔등 위의 주근깨, 끝이 내려간 채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녹빛 눈동자, 깨끗한 이와 손톱과 옷차림. 북부의 공국으로부터 내려온, 동전을 문 새의 문양이 새겨진 상단의 주인은 대개 그런 단어와 문장들의 모음으로 기억됩니다.
단단하고 곧게 떨어지는 몸은 지속적인 이동과 야영, 낯선 환경에의 적응에 꽤 익숙합니다. 길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위험과 돌발 상황에도 그렇습니다. 노련한 움직임과 어지간해서는 바닥나지 않는 체력, 손 곳곳에 박힌 굳은살이나 몸 군데군데 남은 흉터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새로 보급받은 망토의 질감이 꽤 마음에 드는지 항상 걸치고 다닙니다. 망토 아래로는 넉넉한 품의 흰색 상의와 검은 가죽 바지, 밑창이 쉽게 닳지 않는 부츠를 신고 튼튼한 재질의 주머니 많은 가방을 허리춤의 띠에 매달고 있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인 활과 활통은 등 뒤에 짊어진 채입니다.
성격
붉고 검은 빛으로 저물어 가는 시대, 그 끝을 살아가는 선인善人.
거상의 딸로 태어나 자신만의 상단을 꾸려 차곡차곡 입지를 다지길 10여 년, 아직 희망이 남아 있던 시기부터 꾸준히 용을 잡기 위한 토벌대를 위한 무기며 식량을 지원해 왔습니다. 잿더미가 되어 버린 마을에 구호 물품을 조달하고 치료사들과 용병을 고용해 짐승이나 도적으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했습니다. 이득이라곤 현물로 남지 않는 감사와 칭송뿐이고 손해밖에 나지 않는 일에 망설임 없이 나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으니까.
평민부터 귀족까지, 인간부터 이종족까지. 그의 고객은 인종과 신분을 가리지 않았고 때문에 처세술에도 뛰어납니다. 상황과 자리에 맞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합니다. 굳은 나무 줄기보다는 낭창낭창한 가지에 가까워 쉽게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리는 편이나, 그 근간은 불필요한 충돌과 손해를 피할 줄 아는 지혜에 있습니다. 결정적일 때에는 자신의 의견을 주창하고 나서는 데 망설임이 없습니다. 곧 허리를 굽히는 순간에도 그 시선은 결코 주눅들지 않습니다.
장사치 운운하며 속물적인 발언을 종종 일삼으나 대부분이 농담에 가깝습니다. 손익을 따지는 이였다면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은 선행은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호탕하며 다소 장난스럽고, 속에 응어리를 담아 두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충돌은 제 쪽에서 먼저 사과하러 다가가고, 그 외 양보할 수 없는 의견 차이로 인한 분쟁 같은 것들은 돌아서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히 잊고 친근히 말을 붙여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본인을 싫어하는 것이 확실한 사람에게까지 공을 들이는 일은 없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가능성도 없고 그걸 감수할 만한 사유도 없는 일에 돈이든 시간이든 감정이든 투자하는 것은 아깝기 때문입니다.
기타사항
01. 소란스런 시장바닥의 소음에 묻히지 않고 사람의 귀를 사로잡던 목소리를 기억하나요. 시원시원한 몸짓과 웃음으로 가판대 앞에 서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가무잡잡한 피부의 여자, 피가 섞인 혈육이라고 해도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거래하고, 경쟁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 종래에는 제 아버지의 상단에 결코 지지 않는 상단을 꾸려 낸 상단주. 호위로 고용한 용병들과 사냥이나 활쏘기 내기 따위를 일삼으며 호쾌하게 웃고, 귀족들의 파티에 초대받아서도 스스럼없이 파티장을 누비며, 어디로든지 가고 누구에게든 손을 내밀던 여자.
02. 상단 오세르Auxerre, 동전을 물고 날아가는 새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는 아마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명할 것입니다. 용에 의해 초토화된 지역으로부터 온 피난민들로 복잡한 성문 앞에서 깨끗한 옷과 물과 식량, 천막을 나누어 주던 이들의 마차에 새겨져 있던 것도, 재앙을 토벌하기 위해 나서는 기사단의 포션이며 식량 상자 밑에 새겨져 있던 것도 항상 그 문양이었으니까요. 머지 않아 그들 역시 다른 상단들과 마찬가지로 뿔뿔이 흩어졌으나, 일부만은 남아 계속해서 사람들을 도와 왔습니다.
03. “아, 그게 다 제가 맞긴 한데 부끄럽네요. 자고로 선행이라 함은 남 모르게 하는 게 제일 좋다고들 하잖습니까? 하지만 너무 나쁘게 보지는 말아주십쇼. 결국 장사치라서, 돌아오는 거 하나 없는 활동인데 이름자라도 알리지 않으면 정말이지 손해였다구요?”
04. 사용하는 무기는 활. 출신지는 프리발트 공국으로 활쏘기 자체는 어릴 적에 배웠습니다. 10대 후반에는 용병으로 대륙 곳곳을 다니면서 돈을 모으다 작은 상단의 호위를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상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 상단주 오세르는 훗날 그녀의 배우자 될 이로, 미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에게 동업을 제안,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호위 겸 초보 상인으로 살며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운 미셸이 중부 공국과의 정기적 납품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을 때, 오세르는 상단의 명칭에만 제 이름을 남겨 둔 채 미셸을 상단주로 내세웁니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활을 잡지 않았으나, 용이 나타나고 상단이 뿔뿔이 흩어진 뒤로는 오히려 어릴 적보다 활 쓸 일이 더 늘어났습니다. 곧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합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지원하지 않았겠죠.
05. 용이 처음 나타났을 때 피해를 입은 지역에는 상단 오세르의 본부가 위치해 있었고, 미셸의 배우자를 포함하여 그 안에 있던 이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몇은 오세르의 상단주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군대와 기사단들을 지원하고 사람들을 도운 이유가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뭐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조금 억울하긴 하네요.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저는 똑같이 했을 겁니다!”
06. 상단이 한창 세를 불릴 적에는 고블린의 마을이나 몇몇 이종족과도 활발히 교류한데다, 그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종족에 대한 반감은 없습니다. 자칫 실례가 될 수 있는 호기심을 보일 법한 단계는 20대 후반 즈음에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는 능숙하고 정중하므로 마찰을 빚을 일은 적고, 만에 하나 충돌을 일으킨다 해도 원정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빠르게 제 선에서 수습할 것입니다.
지원동기
타고난 수완으로 넘치게 불려 놓았던 재산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뜻을 같이 하던 동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어 홀로 남았을 때 즈음 의용대의 모집 공고를 듣습니다. 희망도 재산도 사람도, 남아 있는 것은 처음 상단을 시작할 때보다도 적습니다.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미셸은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모아 준비를 마치고 원정대에 자원합니다. 그 자신의 전력까지 포함한 최대의 지원, 혹은 투자금. 승률이 낮은 도박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승리와 함께 돌아오는 것들은 어마어마하겠죠. 그러니까, 상인의 감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믿어도 괜찮아요, 이제까지 그가 나서서 손해를 본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