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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이 드문 성의 복도를 걸어 나오던 람다 알고라브는 문득 창에 걸린 산을 바라보았다. 용의 열기가 사라진 산은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계절이 겨울이었다면 분명 발걸음을 따라 마법처럼 서리가 돋아나는 것을 볼 수도 있었겠다고, 누군가 웃었던 소리를 기억했다. 한여름에도 서늘했던 설산의 정상은 잠에서 깨어난 용 덕에 모든 것이 불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으나, 짧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 산은 다시금 흰 서리로 덮일 것이고, 겨울이 온 검은 산은 다시금 제 옛 모습을 되찾아 흰 산을 왜 검다고 부르는지 묻는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수레 가득 보고서와 토벌의 증거물을 싣고 성으로 들어왔던 람다는 가벼워진 손으로 복도를 걸어나갔다. 머리 위에 들어앉아 있던 재앙이 사라진 공작은 크게 기뻐하며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 했다. 그가 그리 웃는 것을 얼마 만에 보았는지, 람다는 비로소 모든 것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용을 피해 썰물처럼 몰려나갔던 사람들은 각자가 있던 자리에서 토벌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앙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그것의 등장만큼 커다란 소식이어서, 사람들은 믿든, 믿지 않든 토벌대의 소식을 듣고 전하며 떠들어댔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도, 그마저도 사라진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걸음을 바삐 옮겼다. 계절이 바뀌며 떠났던 새가 돌아오듯 비어있던 마을은 사람으로 가득 차고, 버려진 도시는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용이 사라진 것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백 일이 지나도록 그 무엇도 불타 죽지 않아서 비로소 무명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북쪽의 산이 다시 흰 모자를 썼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트뤼케들에게서 한 줄 이야기가 도착했다. 온 산을 다 찾아보아도 사라진 새끼용은 찾을 수 없었다고. 그러나 부디 인간은 안심하라고. 트뤼케가 마지막 한 명까지 살아있는 한, 그것을 찾으면 반드시 인간에게 그 소식을 전하겠다고. 북쪽 산의 기록자, 두 번의 재앙을 본 숲의 현자들은 분명 그 무엇도 잊지 않고 함께 했던 인간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를 울리는 빛나는 여우와 함께.

  재앙이 스쳐간 땅들은 저마다 복구를 시작했고, 돈 던의 높은 회랑에는 토벌대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들은 무명이었으나, 어떤 이름은 남겨져야만 하므로. 오랜 세월이 지나 나라가 수없이 세워졌다 무너지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대륙을 스쳤다가 지나가고, 인간과 이종족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질 때에도 숲의 색을 등에 입은 희망이라는 이름은 깎아지른 절벽 속, 그 누구도 해칠 수 없는 곳에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사막이 어째서 재앙의 상징인지 모두가 잊어버리는 날에도 녹색은 여전희 희망으로 전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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